[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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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ans339 작성일26-06-14 11:37 조회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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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1986년 6월 14일 55세1967년 36세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은 커다란 논란에 휩싸였다. 그가 설계해 건립 중인 국립부여박물관 건물이 ‘왜색 시비’에 휘말렸다. 일본 신사 정문 및 지붕 모습인 ‘도리이(鳥居)’와 ‘지기(千木)’를 닮았다는 의견이 일부에서 제기됐다.▲건축가 故 김수근일본 도쿄에서 건축을 공부한 이력이 이런 의견을 더 강화했다. 도쿄대 대학원 재학 중이던 1959년 남산에 지으려던 국회의사당 설계에 1등으로 당선된 후 주목받으며 귀국해 활동한 지 7년을 맞는 때였다.1967년 9월 7일자 5면.분노 목소리가 들끓었다. 전문가 의견은 둘로 갈렸다. 대한건축사협회는 9월 9일 현지 조사에서 “일본색이 짙다”고 결론 내렸다. 반면 부여박물관건축심의위원회는 11일 실사를 통해 “도리이·지기와 같다는 건 속단”이라고 했다. 심의위원 김두종 서울대 교수는 “신문에서 보고는 국민 감정을 무마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와서 실물을 보니 도리이나 신사 생각은 안 난다”고 했다. 취재 기자는 기사에 이례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1967년 9월 14일자 6면.“현지에서 두 개의 조사 상황을 다 본 기자는 11일 ‘심의위’의 의견에 더 타당성이 있다는 주관적인 판단을 절박한 양식(良識) 같은 것에 따라 이례적으로 해야 했다.”(1967년 9월 14일 자 4면)조선일보 미니칼럼 ‘만물상’은 ‘왜색’이라고 흥분해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일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썼다.“우리 사회의 정당한 발전을 위해서 경계해야 할 것은 민족 감정을 해쳐서는 안 되는 배려와 함께 그러한 일변도의 경향성과 곱지 못한 국민 성격의 노출이 아닌가 한다. (…) 문제의 건축물이 우리의 민족 감정이 용서 못할 만큼 왜색이 짙은 것이라면 그것은 마땅히 시정돼야 한다. 동시에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몇 사람이 건듯 본 인상 따위는 도외시하고 부여박물관은 예정의 계획대로 완성돼야 한다.”(1967년 9월 15일 자 2면)1967년 8월 20일자 6면.김수근은 “그 같은 감정을 유발하는 요소를 재검토해보겠다”(1967년 9월 12일자 7면)라고 하면서도 “부여박물관이 두고두고 내 죽은 다음에도 산 증거로 남아 이 건물이 일본 신사의 [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1986년 6월 14일 55세1967년 36세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은 커다란 논란에 휩싸였다. 그가 설계해 건립 중인 국립부여박물관 건물이 ‘왜색 시비’에 휘말렸다. 일본 신사 정문 및 지붕 모습인 ‘도리이(鳥居)’와 ‘지기(千木)’를 닮았다는 의견이 일부에서 제기됐다.▲건축가 故 김수근일본 도쿄에서 건축을 공부한 이력이 이런 의견을 더 강화했다. 도쿄대 대학원 재학 중이던 1959년 남산에 지으려던 국회의사당 설계에 1등으로 당선된 후 주목받으며 귀국해 활동한 지 7년을 맞는 때였다.1967년 9월 7일자 5면.분노 목소리가 들끓었다. 전문가 의견은 둘로 갈렸다. 대한건축사협회는 9월 9일 현지 조사에서 “일본색이 짙다”고 결론 내렸다. 반면 부여박물관건축심의위원회는 11일 실사를 통해 “도리이·지기와 같다는 건 속단”이라고 했다. 심의위원 김두종 서울대 교수는 “신문에서 보고는 국민 감정을 무마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와서 실물을 보니 도리이나 신사 생각은 안 난다”고 했다. 취재 기자는 기사에 이례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1967년 9월 14일자 6면.“현지에서 두 개의 조사 상황을 다 본 기자는 11일 ‘심의위’의 의견에 더 타당성이 있다는 주관적인 판단을 절박한 양식(良識) 같은 것에 따라 이례적으로 해야 했다.”(1967년 9월 14일 자 4면)조선일보 미니칼럼 ‘만물상’은 ‘왜색’이라고 흥분해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일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썼다.“우리 사회의 정당한 발전을 위해서 경계해야 할 것은 민족 감정을 해쳐서는 안 되는 배려와 함께 그러한 일변도의 경향성과 곱지 못한 국민 성격의 노출이 아닌가 한다. (…) 문제의 건축물이 우리의 민족 감정이 용서 못할 만큼 왜색이 짙은 것이라면 그것은 마땅히 시정돼야 한다. 동시에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몇 사람이 건듯 본 인상 따위는 도외시하고 부여박물관은 예정의 계획대로 완성돼야 한다.”(1967년 9월 15일 자 2면)1967년 8월 20일자 6면.김수근은 “그 같은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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